윤상원  YOON SANG-WON

1950년, 현재 광주광역시로 편입된 전남 광산군 임곡 천동마을에서 태어나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다. 1975년 제대한 뒤 유신독재에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눈뜬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윤상원은 공장에 취직하여 노동 현장을 누비는 한편 들불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전민노련 중앙위원으로 참여하여 본격적인 조직운동을 펼치려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중 항쟁이 발발하자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하던 김상집 등과 함께 화염병과 투사 회보를 만들어 공수부대와 맞서 싸운다. 5월 21일,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가 가해진 이후에는 시민군 대변인이 되었고 외신기자회견을 열어 학살의 진상을 세계에 알린다. 시민군대변인으로서 ‘총기 회수, 협상 분위기 조성’을 바라는 재야수습위원회와 ‘무장해제 반대, 결사 투쟁’을 외치는 학생수습위원회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대학생과 예비군을 재무장시켜 마침내 민주투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5월 27일 새벽, 결사항전을 이끌다 장렬하게 산화한다.

1980년 5월,
윤상원의 10일간의 기록

5월 18일 일요일, 맑음
– 5·17 계엄 확대 조치에 대해 인지
–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 일행이 광천동으로 찾아와 상황 대처 방법 모색
– 전남대학교 부근 시위 시작
– 녹두서점에서 김상집과 화염병 제작 후 시위 현장에 공급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 서울 등 외부지역에 광주 시위 상황 전파
– 들불야학 정재호, 서대석 등과 등사기로 시위 전단 제작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 비
– 선언문 혹은 격문 형태의 전단 제작, 시가지 시민 투쟁 현장 배포
– 박효선 등과 계림동 시위 현장 참여 후 근처 인쇄소에서 유인물 제작 및 살포

5월 21일 수요일, 맑음
– 심야 시위에 이어 계속된 시가지 현장에서 ‘민주수호 전남도민 총궐기문’ 제작 및 살포
– 녹두서점에 김상집, 박효선, 정상용, 이양현, 정해직, 윤강옥 등과 투쟁 상황 및 대응책 논의
– 전용호와 함께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 1호 제작 및 배포
– 계엄군의 조직적 발포 이후 시민 무장 시가전 전개, 공수부대원 철수

5월 22일 목요일, 맑음
– 동생과 함께 시민 무장 지프차를 타고 농성동 방향으로 투사회보 배포
– 윤강옥, 박효선 등과 함께 시민군이 장악한 도청 청사에 들어가 학생대표 김창길을 만나 투쟁 의지를 전달
– 박효선, 윤강옥, 김상집 등과 함께 매일 궐기대회 개최, 대시민 홍보 강화, 운동세력 규합, 그 후 도청의 시민군 참여 등을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 대시민 홍보 작업(도청, 녹두서점, 광주 YWCA, 도청 앞 궐기대회장)
– 도청 내 수습위 관계자, 무장 시민군 지도자와 접촉
– YWCA에서 궐기대회 평가 모임, 대학생 집결소 설치 및 운영
– 궐기대회 지속적 개최, 재야인사 접촉, 청년 학생운동 세력 조직화, 도청 입성 등 논의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 투사회보 제작팀이 광천동에서 YWCA 제작실로 이동
– 도청 출입하며 수습위와 토론
– 2차 궐기대회 개최
– YWCA에서 궐기대회 평가회의, 조직적 부서 편성, 차후 대책 논의
– 도청 사수를 위한 준비 및 대시민 홍보와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비
– 무기 반납 주장에 반대하며 박남선 등 도청 내 동지 규합
– 제3차 궐기대회 개최
– YWCA 대학생 집결소에 모인 100명의 대학생들을 도청으로 인솔하여 무장 경비 등에 배치
– 도청 3층 국장실에서 회합 후 청년 학생 투쟁위 결성(위원장 김종배, 대변인 윤상원)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 계엄군 진압작전 개시, 재야인사들 ‘죽음의 행진’ 결행, 진압군 퇴각
– 계엄군 진입에 항의하는 제4차 궐기대회 개최 및 시가지 시위
– 도청 홍보실에서 대변인 자격으로 10여 명의 외신기자와 기자회견
– 무기 반납 회의에서 윤상원 박남선 등이 회의장에 들어가 무기 반납 반대 이유를 30분간 연설하여 의결을 무산시킴

5월 27일 화요일, 맑음
– 새벽 1시 계엄군 작전 전개로 인해 무장 시민군 조직적 배치
– 도청 무기고 앞에서 무기를 배급하면서 최후까지 저항할 것을 호소하며 생애 마지막 연설
– YWCA에서 무기를 배급받기 위해 나온 들불야학 나명관, 신병관 학생 등과 마지막 조우
– 이양현, 김영철 등 다수의 시민군과 도청 민원봉사실 2층에 있는 도청 회의실에 들어가 노동청 방면 창틀에서 수비
– 새벽4시, 도청 뒷담을 넘어온 공수부대원의 사격으로 복부에 총상을 맞고 사망
– 도청회의실 중앙에 이불을 깔고 시신 안치
– 외신기자 명함을 소지한 성명불상자로 처리되어 상반신이 불탄채 시신이 공개됨

5월 28일
– 시청 청소차로 운송되어 망월 시립묘지에 성명불상자로 가매장됨

6월 22일
– 가족들이 시신 확인 후 정식 매장

인사말

윤상원의 삶과 그 날의 기록

하성흡의 수묵으로 그린 윤상원 일대기

성남훈의 사진과 김상집의 평전으로 가는 '5월 그날의 현장'

열사의 일기로 보는 노동운동가 윤상원

김지욱의 영상으로 듣는 5인의 ‘그날의 증언’

쿤낫, 주용성의 아시아 현장 사진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노래’

활동 및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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